CATEGORY

금빛 ...다시 바라보기 (27)
금빛 세상보기 (4)
금빛 바라보기 (10)
금빛 생활사 (13)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LINK



  1. 2017.07.03
    KIA 타이거즈의 두자리점수 6연승, 그리고 양현종, 나지완.
  2. 2013.10.07
    타이거즈의 우승(V10), 기록과 해태라는 이름.(2009.10.29)
  3. 2013.10.07
    역사적 현장, 한국시리즈 7차전 관람 (V10 타이거즈 우승!!!)(2009.10.26)
  4. 2013.10.07
    한국시리즈 6차전 관람후기(2009.10.24)
  5. 2013.10.07
    96',97' 해태타이거즈, 추억의 한국시리즈(2009.10.22)
  6. 2013.10.07
    15년만의 잠실야구장 나들이(2009,09.14)
  7. 2013.10.07
    타이거즈의 8연승,다시 시작된 야구사랑(2009.08.09)

2009년 어쩌면 나에게 그해가 프로야구 직관의 마지막 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생활에 미치도록 바쁘지만 그래도 그때만 해도 여유로운 개인적인 삶을 살수 있었던 마지막 해였는지도요.


아무튼 찬란한 2009년 타이거즈의 우승을 함께 했던 그날의 한국시리즈 7차전의 기억은 여전히 제 뇌리에 각인 되었습니다.


3장의 티켓을 준비했지만 자신이 가면 매번 지는 것 같다고 마누라는 결국 직관을 포기한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


어렵게 구한 외야 티켓을 혼자 가지고 3루쪽외야에 홀로 앉아 있던 기억.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습니다.


머리위에 있는 하얀공.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공이 제 머리위로 지나갑니다.


참.......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 이 느낌.

그날 함께 있었던 분만 아시겠죠... ㅎㅎㅎ



오늘 양현종 선수의 시즌 11승의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역시 여름은 양현종 선수에게 힘든 시기였나 봅니다.

등판일정을 조절 할때는 조금 나아지는 듯 싶더니, 화요일 선발이후 일요일 등판은 역시 체력 조절이 아직까지 힘든가 봅니다.


그래도 노련함으로 4실점으로 잘 막았고 그 마음의 고생이 팬들과 선수들에게 전해집니다.



버나디나의 투런홈런후 7대 4로 앞선 상황이 되자 버나디나에게 포옹을 하는 양현종 선수.


야구는 혼자하는 게임이 아니며 대표적인 인생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야구야 말로 사람과 사람의 전쟁이라고 봅니다.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기에 같은 동료와 함께 호흡하고, 팬에게 보답하는 박수를 보내는 양현종 선수의 오늘의 모습은 그가 왜 기아의 에이스이고,

그 오랜 꾸준함을 보여줬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어려운 1년 FA  결정 .

그냥 그렇게 매년 기아에 1년 계약하면서 레전드가 되길 바랍니다.



지못미. 나지완.


최근엔 나지완은 군대가라의 표상인듯 아직도 얘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그래서일까요.

군면제이후 더 힘들어 보였던 나지완 선수.


하지만 저는 2009년 추억의 이름으로 나지완 선수에겐 절대 면책권을 혼자 부여했습니다.


할때는 하는 타자라는 것.

(오늘은 14일동안 10점을 때리라고 광고판을 때렸습니다.)


그 당시 하늘 같은 선배선수들과 함께 한 한국시리즈에서 함께 했던 그 놀라운 기적같은 순간.


그 기적같은 순간을 함께 한 선수가 지금의 타이거즈에 있습니다.


양현종,나지완,안치홍,김선빈,정용운.......아마도 윤석민...


아마 올해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 간다면 이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무패의 타이거즈 신화를 다시 만들지 않을 까요?


나지완이 오늘 맞힌 광고판의 문구처럼.

14일동안(전반기 끝나기 전 2주내내 ... ㅋㅋㅋ)

10점 경기 함 만들어 보자구요.


오늘 방송의 내용중 이범호 선수의 인터뷰가 와 닿습니다.


상무,경찰청의 3,4번 타자(김선빈,안치홍) 삼성의 4번타자(최형우) sk의 1번타자 (이명기)가 왔는데 왜 강해지지 않을수 있을까.


'14일동안' 한번 무패신화를 만들어 볼까요?


제 욕심입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rackback 0 And Comment 0

우선 이글은 10월 22일 새벽 과거 97년의 해태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를 회상하는 경기를 보며 갑자기 떠오르는 인물 김상진 선수의 이야기를 검색하다가 쓰기 시작했음을 알림니다.
무엇보다 김상진 선수의 97년 5차전경기의 추억을 찾다가 발견한 한 카페(
http://cafe.daum.net/sangjin11) 의 글들을 보면서 그 오랜 시간 팬으로서의 모습을 간직한 글들을 보고 82년 창단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 또한 저의 머릿속을 스쳐지나면서 주옥같은 팬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제가 그동안 기아로 바뀌면서 무관심했던 타이거즈에 대한 마음을 반성하게도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우승할 것''만 같았다. 마치 ''진짜 타격의 신의 모습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듯 이강돈은 1회말, 다른 누구도 아닌 선동열의 공을 받아쳐 담장 한가운데를 넘겨버렸다. 그 무시무시하고 징글징글하고 너무나 너무나 짜증스러웠던 해태를, 이번에는 정말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어진 네 경기에서 빙그레는 내리 졌다. 도대체 이 놈의 해태라는 팀에는 무슨 천사라도 들러붙은 건지, 선동열을 넘어서도 문희수가 있었고, 김정수가 있었고, 김성한이 있었고, 장채근이 있었고, 한대화도 있었고, 이순철도 있었다. 팀 창단 후 92년까지 무려 네 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빙그레는, 그때마다 번번이 해태를 만나(92년은 롯데 자이언츠) 맥없이 패했다. 이건 정말이지, 호랑이와 독수리의 싸움이라기보다는 고양이와 병아리의 먹이사슬 관계였다.

해태를 본격적으로 증오하게 된 계기는 91년 한국시리즈였다. ''시속 145㎞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투수(아마도 87년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팬북에 이렇게 설명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송진우의,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퍼펙트 기록달성이 해태 때문에 깨졌다. 빙그레는 역시나 맥없이 패했고 당연히 한국시리즈 우승은 해태의 차지였다.

그저 신생팀이라는 이유만으로 빙그레를 응원했던 마음 여린 초등학생에게 당시 해태란 ''왜 인간은 타인을 증오하게 되는가''라는 따위의 철학적 고민을 안겨줬던 선동열을 보유한 팀이었고, ''어떤 거짓말을 해야 떡볶이 사먹을 돈을 받아낼까''하는 따위를 고민하던 아이에게도 ''프로야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력 평준화가 필수적''이라는, 가히 하일성 뺨칠 정도의 문제의식을 안겨줬던 팀이었다(아마도 80~90년대 빙그레 이글스와 마찬가지로 해태 앞에서는 호랑이 앞의 고양이었던 삼성 라이온즈나 꼴찌를 도맡았던 인천 야구 팬들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8~90년대 당시 해태란, 야구를 좋아하던 초등학생을 축구장으로 돌려보낼 정도의 위력을 가진 팀이었다. 해태와 포스트시즌에서 맞붙는 팀의 팬에게는 축제를 고통의 나날로 가득 채워준 증오의 대상이었다.

97년까지 해태의 홈 유니폼이었던 그 촌스러운 붉은색 상의-검정색 하의 콤비는 제대로 된 팀 구성원도 채우지 못하고 출범했음에도(82년 출범당시 해태 타이거즈 선수는 14명에 불과해 김성한이 선발투수로도 뛰어야 했다. 그는 프로야구 첫 시즌 10승을 거뒀다) 강자들을 차례로 거꾸러뜨린 악바리 야구의 상징이었다.

실로 오랜만이었다.''최강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가장 약한 자들의 영웅을 추억하게 된 것이. 그 무시무시했던 해태를 다시 떠올린 것이.
<http://cafe.daum.net/sangjin11/JRd/394 글중에서>

갑자기 그 당시 시절이 떠오릅니다.
LG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 같은 서울출신 대학동기이지만 해태를 응원하는 저는 그 동기들 그룹에서 야구이야기를 할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늘 한국프로야구의 적이라고 이야기하는 해태타이거즈였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자주 이기고, 남들 못하는 우승도 너무 쉽게 하고, 더더군다나 선동열,이종범등 '투수는 선동열,타자는 이승엽,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처럼 당시 쟁쟁한 스타군단이었던 해태는 실력을 떠나 다른팀 응원하는 사람에게는 미움의 대상이었으니까요.
오죽하면 후에 해태가 어려워졌을때 '동열이도 없고,종범이도 없고..' 하는 김응룡 감독의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의 해태타이거즈의 위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현재의 SK에서 미움의 대상이 김성근 감독으로 바뀔수밖에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97년 우승때문에 주변 동기들과 다소 멀어진 경험이 한국시리즈 끝나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같은 서울출신에 잠실경기장과 인근에 사는 동기들은 LG의 충실한 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 친구들도 그런 과거의 열정으로 프로야구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현재 발견한 김상진 선수의 팬카페는 그동안 저의 야구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내가 진정 타이거즈 팬인가' '단지 해태타이거즈 팬일뿐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분들의 선수에 대한 애정,열정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토록 누구의 팬이라고 열정적으로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고, 그만큼 선수에 대한 애정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해태타이거즈는 항상 최고였고, 지는 것은 그저 다른팀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12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다가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팬들의 오만함을 가르쳐주고 프로야구의 참 맛을 느끼라고 말입니다.


27일. 이재주,최경환 선수등의 방출보도가 나왔습니다.
김종모 수석코치등 5명도 계약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함께 나왔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일단 해봅니다.
일단 이재주 선수의 경우 1억8천만원의 연봉에서 FA로 다른구단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8천만원에 재계약하고 올해는 다시 1억2천만원으로 상향해서 계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타를 위주로한 계약이었고, 올해 그 능력은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기를 보면서 이재주와 코치진간의 소통은 원할하게 보이지 않는 느낌을 받은 경기가 몇번 있었습니다.그래서 조금은 이해를 하는 편입니다.
오히려 최경환 선수가 다소 아까운 경우라고 보여지는데 아무리 보도를 찾아보아도 최경환선수의 의견은 나오지 않고 있어 그저 들리는 소문처럼 은퇴를 생각했다면 아깝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많은 팬분들은 우승후 너무 빨리 방출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지만 28일 훈련을 앞두고 있고 또 1월까지 군제대선수만 5명,신인 계약선수도 9명 올리고 올해 군대간 이범석외 5명정도가 군입대할 예정이라 3명정도의 자리가 아직도 모자른 상황인것 같습니다.
따라서 발빠른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인원도 부정확한 상황에서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데 참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봅니다.

그중 김종모 수석코치에 대한 이야기를 원성섞여 말이 나옵니다.
'해태지우기라는 미명이다'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했으면 애시당초 V10 이라는 말도,한국시리즈 무패의 기록이 자신때문에 깨질가 걱정이라는 말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조범현 감독이라도 기아타이거즈 팬의 특성을, 타이거즈에서 해태라는 과거를 부정할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부정하면서 시작을 하면 미래도 없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보았을때 조범현 감독 스타일과 다른 점을 기사에서 몇번 본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이미 김종모 수석코치와 100% 맞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코치진은 감독의 전권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것을 놓고 왈가불가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신구 조화로 이룬 V10.
1차전은 이종범선수의 시작이었고, 2차전 최희섭,5차전 로페즈 ,7차전 나지완,안치홍등 신인선수의 마무리로 우승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우승은 해태라는 이름의 전통적 선배들과 중간의 연결고리,그리고 신인등 후배들이 연속선상으로 활약을 하며 마치 신구교체의 모습을 경기에서도 보여주었다고 보여집니다.
그것이 바로 타이거즈의 현 상황입니다.

해태라는 이름의 타이거즈팬들. 그들을 아우르는 이종범,이대진 선수들의 이름이 중심역할을 하고 중간에서 바쳐주고 후배들이 커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바꾸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언제까지 해태타이거즈를 외칠수만은 없으니까요.

이종범 선수는 그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면 과거처럼 종용할 선수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구단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대진,김종국 선수의 경우 참 어렵습니다.
점점 적어지는 입지,제가 봐도 구단측에서 어려움이 있는 선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서두에 미리 적었듯이 기아타이거즈는 해태타이거즈의 연속선상에 있고, 그 연속선상에 과거를 그리워하며 지금의 기아타이거즈를 응원하는 수많은 팬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연결고리가 이종범,이대진 선수가 아닐까 합니다.
만일 이러한 연결고리를 강제로 해체하려고 한다면 결국 그 패인은 올해 7위한 LG의 경우처럼 될수도 있고 또한 너무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한다면 한화와 같은 패인이 나올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연결고리를 원만하게 잘해 나가야만 기아타이거즈 팬들과의 연결고리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태라는 이름 이젠 추억입니다.
하지만 팬들은 그 추억을 먹고 삽니다.
구단에서 강제적으로 그 추억의 연결고리를 끈으려 한다면 외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충분히 이유를 알려주어가면서 타이거즈라는 이름이 기아타이거즈로 녹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빠른 교체는 일단 우려를 키우는 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거명되어 나오는 선수들의 일처리는 분명 뒤에서 통보하는 식이 아닌 팬들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조범현 감독과 기아타이거즈 구단이 마지막 연결고리를 잘 풀어내느냐의 마지막 관문이며 그것이 내년에도 한번 더 도약하는 타이거즈의 미래를 함께하는 팬들과의 '추억 나누기'가 될 것입니다.

신고
Trackback 0 And Comment 0

지금까지 응원가가 귓속을 맴돌며 야구의 한장면 한장면이 떠오릅니다.
미국야구 100년 역사에서도 단한번 나왔다던 월드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
그 장면을 28년 한국의 프로야구에서 세계적으로 두번째 7차전 끝내기 홈런.
그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는 마음과 그렇게 애닳던 V10에 대한 열망을 몸소 현장에서 느낄수 있었던 감흥이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경기장에 가는 마음은 좀처럼 쉬운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7차전 그동안은 여유있게 지정석위주로 다녔고 한국시리즈 4차전은 회사에 허락을 맡고 일반석이지만 일찍가서 좋은 자리를 잡았지만 7차전은 회사에 말도 안했고 티켓은 새벽 4시 취소표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반석을 2장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6차전의 패배로 마누라는 더이상 힘들고, 자기가 가서 진것 같기도 하고 일반석인 잠실에(문학구장보다 지정석이 좀 불편한 상환에서 일반석은 더 힘들겠다며) 못가겠다고 하고 토요일에 저는 출근도 해야하고, 참 어떻게 할까 고민도 했습니다.
저 역시 최근 3번 직접 관전 승률이 전패라 가야할까 고민도 되고 안가는것이 우리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는 경기만 볼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만일 V10의 역사적 현장에 없으면 후회하는 것이 싫어서 혼자 회사에는 그저 기아타이거즈 우승하면 술 쏟다는 말을 남기고 잠실 야구장으로 홀로 향했습니다.

도착하고 아직 관중이 많은 것 같지 않아서 홀로 잠실야구장을 외야에서부터 한바퀴 돌면서 현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도착하니 SK선수들이 연습중이었고, 이만수 코치가 외야에서 아이들에게 공을 선물로 주고 있었습니다. 역시 과거 삼성때와 변함없는 이만수 코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한껏 여유 부리다가 결국 내야석 자리도 못 차지하고 외야석도 돌아 3루외야석(SK외야석)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게임 시작전 호돌이 마스코트가 외야팬들에게 응원을 하면서 돌았지만 물론 1루외야석까지만 돌고 갔습니다....

 

< 안치홍 홈런 장면시 제위치입니다.>

솔직히 혼자 잠실야구장을 향하면서 오늘은 외야석에 앉을 결심을 했었습니다.
5차전 중계를 보았을때나 6차전 직관했을때나 저정도는 기아타이거즈 응원석이라는 생각에 전광판 안가리고 전체구장 눈에 들어오는 위치 (6차전 잠실 201블록 지정석은 상단이라 이종범수비도 김상현타구도 전혀 안보이는 자리라 지정석중 가장 안좋은 구조라고 생각들었습니다.) 전광판 옆 3블록이고 앞에서 3열정도가 구장이 눈에 확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응원을 하는 것을 생각하니 처음에 와서 내야석 자리 잡았으면 있었는데 너무 여유부린 것이 후회도 됩니다. 우승장면 선수들 모습을 제대로 못봤으니까요.
하지만 외야석을 결심했던 이유. 바로 홈런. 제 유니폼 김상현을 생각한 자리였고 오늘은 하나 해주겠지 하는 생각, 그 생각은 김상현이 아닌 나지완,안치홍이 해주었습니다.
(그래도 김상현 선수는 올해 다시 타이거즈로 저를 비롯한 많은 타이거즈 팬들을 돌아오게한 올해의 수훈MVP 선수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제눈을 옆으로 지나치면 무조건 홈런인 자리.
나지완 선수의 첫6회 홈런은 옆블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방송보니 전광판 아래더군요.
처음 SK 박정권 선수의 2점 홈런때, 홈런타구를 끝까지 보았습니다.
정말 파올폴대와 관중석 상단을 삼각형으로 그리면서 살짝 걸리듯 넘어가더군요.
저 자리에 연습타구시 SK 선수들이 많은 홈런타구를 날리더니 정말 하나 넘어왔습니다.
하지만 이후 안치홍,나지완은 그 장면의 아쉬움 잊게 하며 제 눈으로 보았던 홈런 한개가 넘어올때마다 눈물이 고였습니다.

낮경기 14시에 시작한 경기의 열기는 한국시리즈 7차전답게 응원열기가 뜨거웠고, 그렇게 4시간넘는 경기를 지겹게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오늘만은 그 결과를 놓치않기 위해 시간에 대한 걱정은 이미 접어두었습니다.
 

 

열심히 '기아없이는 못살아'를 외치는 팬들.
그렇게 시간은 조명이 들어오는 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우승을 알리는 나지완의 홈런타구는 저의 눈 옆으로 높게 지나갔습니다.
이어 외야석에 안내장으로 알리던 그 축포소리가 뜨겁게 터졌습니다.

 정말 기아타이거즈가 V10을 이루는 순간을 실감했습니다.
후에 집에서 와서보니 이 중간에 많은 우리 타이거즈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선수들이 외야까지 한바퀴를 돌때 평소 룸메이트 절친 최희섭선수가 나지완선수를 감싸안으며 손가락을 나지완선수를 향합니다.
마치 '얘가 오늘의 주인공이에요' 하는 모습으로 ....
돌면서도 손을 놓치않고 도는 모습입니다.

나지완선수 MVP 쏘울 카퍼레이드 화면엔 덩치가 커서 안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선루프위로 몸을 들어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급히 1루로 달려가 찍은 뒤풀이 모습.
구톰슨은 부비부비,양현종의 브아걸춤 등등. 특히 막내 정용운은 멋진 춤을 선보였습니다.

그렇게 선수들과 인사하고 응원단장 김주일 및 치어리더의 인사들.
마지막 뒤풀이...


이제는 '목포의 눈물'이 아니라 '남행열차'를 부르며 힘찬 마무리를 합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잠실경기장은 분주한 뒷정리가 남았습니다.

3회까지 팽팽한 경기 수비 착실히하는 우리 기아타이거즈 선수들.
주변에서도 오늘 '기아가 이기겠는데' 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4회 SK 박정권의 홈런을 맞는 순간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맥주를 마십니다.
5회 1점주고 1점을 얻어 3대 1이 되었을때 희망을 보았습니다.
6회초 다시 2점을 주었을때는
아! 내가 여기 있어서 지는것은 아닌지 집에 갈까 고민했습니다.
바로 나지완의 홈런이 눈 옆을 지났을때 이제 시작이구나 했습니다.
안치홍의 홈런에 이길수도 있겠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김원섭선수의 동점2루타,이어지는 나지완선수의 고의사구.
'최희섭인데,최희섭인데'를 외치는 팬들.
하지만 1사 만루에서 우리의 CK포 최희섭은 삼진,김상현은 파울플라이.
몇몇 관중들이 이야기합니다.

'경기를 극적으로 만들려고 일부로 못치는거 아냐?'

그리고 그 말처럼 정말 극적으로 9회 1사 끝내기홈런.

뒷정리를 하면서 경기장 관계자되는 분인 것 같은 분이 한마디 합니다.

'정말 오늘 대단한 경기, 역사적 경기를 보러오신거' 라구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광주에도 이런 경기장 있으면 더 좋았을 거라구'

솔직히 그러면 저야 거꾸로 광주로 한국시리즈보러 휴가내야겠지만 그렇더라도 광주경기장이 정말 화면에 보이는,그런 경기장을 아직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정말 돔도 필요없습니다. 그저 2만 5천석의 이쁜 광주구장, 기타 지방구장도 마찬가지로 이쁜 지방야구장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한국시리즈 관람 마지막 소망이었습니다.

신고
Trackback 0 And Comment 0

잠실 지정석 예매로 여유있게 가도 되겠지 하는 마음에 사무실에 따로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누라는 시간마춰 출발했고, 저는 갑자기 사장님이 오신다는 이야기에 어쩔수 없이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이래저래 일 때문에 5시40분이 되어서야 출발 .
주차하는데 시간걸려서 이래저래 늦고, 마누라는 처음가는 잠실야구장이라 1루내야 출입구에서 기다려야하는데 외야로 입장을 해버리고, 또 시간허비....
멀리 탄천주차장에 주차하고 뛰어오느라 땀은 범벅.

다행이라면 2회 이호준의 홈런을 눈으로 안봐도 되었다는 점.
잠실 지정석중 어쩌면 가장 안좋은 블럭이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201블록은 이종범 선수의 수비를 볼수 있는 위치가 아니어서 제대로 관람을 못했고, 김상현 선수의 홈런성 파울타구도 갑자기 사라져서 DMB로 확인을 했어야 했습니다.

마누라를 외야출입구에서 빼내어와서 다시 내야출입구로 가려고하니 도장을 찍어주더군요.
새벽에 암표로 구입해서 들어간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 표없이 도장으로 입장해서 계단이나 복도에 앉아서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로 이 도장을 악용하는 수법인것 같았습니다.
마누라가 표를 교환할때 들었던 이야기는 암표값으로 12만원주고 e-티켓 받아서 들어오신분도 있더군요. 주민번호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전화하고 난리였다나...
주민번호 다는 아니고 앞번호를 불러주면 티켓은 준다고 합니다.
기계로 티켓 받을때는 주민번호가 다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혹시 인터넷에 떠도는 표를 구입하시는 분들은 주의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꽉찬 잠실구장.
어제 보도에서 보는 것보다 SK팬들도 외야에 많이 오셨습니다.
물론 기아팬들은 더 많으셨습니다.
기아의 제2 홈이라는 잠실구장 답게 외야의 5분의 1은 기야팬이셨고 3루 SK 지정석에도 많은 수의 기아팬들이 보였습니다.


늦게 가기도 했지만 이래저래 사진을 찍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응원도구 준비도 다소 부족했고 시간도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오늘 경기를 잘 풀리지 않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윤석민 선수가 나왔는데 6차전을 져 버리니 어떻게 할말이 없었고,공격 때마다 치기는 치는데 이건 게임을 잘하고 있는건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뭐 그것은 SK 도 마찬가지인 것이 서로 9안타,11안타를 쳤는데도 점수는 2대3 인것을 보면 두 팀다 정말 투수게임도 아니고 타격게임도 아닌 어중간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질수는 있는 어떻게 지느냐에서 공수 다 어려웠던 경기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내일 7차전.
한국시리즈 직관 2번을 패를 본 저이기에 7차전을 보러 갈까 말까 망설이게도 합니다.
같이 본 마누라는 내일 절대 안간다고 합니다.
가서 지는 경기 보는 것이 싫고, 주중 2일을 연차내고 반차내고 왔는데 힘이 들어 내일은 죽어도 못가겠고 버팁니다.
문학경기장은 일반석으로 갔지만 그래도 잠실 지정석보다는 조금 넓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잠실도 지은지 오래되서 현재 국민들의 체격과 안맞는 좁은 좌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직관 패라 중계를 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억울합니다.
지는 이기든 2009년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를 봐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혼자라도 가야할 마음이 듭니다.

회사에 출근하지만 방법을 써서라도 가야겠습니다.남들은 몇만원씩 웃돈 줘가며 들어가는 경기를 일반석이라도 표도 있는데 그저 그 분을 삭이기엔
직관 100% 패라는 것은 기우일 뿐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응원 할 예정입니다.

이제 한경기다...!!!.

신고
Trackback 0 And Comment 0

게임이 없는 하루.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다가 96년과 97의 해태타이거즈의 자료를 일부 찾았습니다.
얼마전 이종범 선수가 이야기 했던 현대와의 퍼팩트 경기후의 이야기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승2패후 그것도 마지막 4차전 10월20일 경기 정명원 투수의 노히트노런 경기.
저 역시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당시 '지더라도 안타만 하나 제발 쳐라'며 응원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해태가 그것도 한국시리즈에서 노히트노런 경기를 하다니' 하면서 분을 삭였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2연승하며 우승하던 타이거즈의 모습.
지금 돌이켜보면 해태타이거즈 시절 정말 대기록을 상대투수에게 많이도 안겨주었던 기억도 다시금 생각이 나기도 하면서, 극과 극을 보여주었던 그 시절 경기를 일부나마 회상하게 했습니다.

이종범의 당시 모습은 역시 감동입니다.

오래된 동영상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동영상이 걸렸습니다.
일부 캡처 화면으로 대신합니다.


< 96년 추억의 한국시리즈 >



< 97년 추억의 한국시리즈 >

화면을 보다보니 김종국선수가 홈런을 쳤다는 내용을 볼수 있었습니다.
장성호 선수의 모습도 보이고요. 올해도 그래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갑자기 밀려옵니다.

특히,당시 최연소 20세의 한국시리즈 승리투수 故 김상진 선수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5차전 역투가 있었던 한해입니다.

신고
Trackback 0 And Comment 0

잠실야구장을 찾은지 15년만인 것 같습니다.
94년 9월 가을 정기 학교대항전을 이유로 찾은 잠실야구장이니 어제 13일을 대충 15년만에 야구장에 찾은 것으로 보아도 될 듯 합니다.
프로야구를 좋아하지만 그렇게 자주 찾아가보지는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예전 동대문운동장 시절에는 5분거리로 집도 가깝고 형도 자주 가는 편이었던 시절이라 야구장에 자주 다녔는데 잠실야구장시절이 오고부터는 왠지 자주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잠실야구장 시절에는 또 역시 집에서 10분거리에 야구장이 있었지만 잠실야구장에서의 타이거즈 경기를 보려고 간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혹 이런 이유 하나씩 가지신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내가 국가대표 중계를 시청하면 우리나라 경기가 지더라.....
저 역시 제가 잠실야구장에 가서 본 경기를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긴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동대문운동장 시절에는 안그랬는데, 이상하게 잠실야구장 시절로 와서는 보러가면 지는 일이 100% 이었고, 특히 나중에 LG 팬들이 넘쳐났을 때는 주변에 동기들이 LG 팬들이 많아서 갈 일도 없었습니다.
기껏 경기장에 가서 지는 경기 보고오는 마음.
그 씁쓸한 마음은 스트레스가 오히려 배가되는 상황일 것입니다.
(오늘도 역시 결과론적으로 동일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마음이 여전히 들었지만 13일 오늘 만큼은 잠실에서 정규시즌 마지막 타이거즈의 잠실경기라 꼭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사전예약을 하고 일찍 준비하여 출발했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가고 싶었지만 표도 못 구했고, 오랜만의 잠실 구경이라 어떻게 가야 가족들이 오면 편할까 사전답사 차원도 있었습니다.

오랜만의 잠실야구장 토요일 매진과 다르게 외야는 빈자리가 다소 있어 보였습니다.
물론 내야석은 꽉 찬 상태여서 잠실야구장도 여러분들과 함께 관람하니 좌석이 작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낮 1시 반 경기라 햇볕은 뜨거웠고 지금 저는 팔등이 발갛게 타서 약간 쓰린 정도의 강한 햇살의 날이라 관람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돔구장의 강렬한 유혹이 생기 않을 수 없습니다.
잠실도 이정도인데 정말 광주,대구,대전 구장의 관람 여건은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기아 선발 서재응 선수의 투구 모습.
지난 SK전처럼 148km의 속도도 안나오고 최고 속도가 140km 정도 전광판에 찍혔습니다.
SK전 정도만 던져주면 볼만 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쉽게도 초반 대량실점.......
집에 와서 인터넷 보니 강판 당하고 나서 안좋은 행동 또한 보였나 봅니다.
서재응 선수가 참 아쉬운 것은 팀의 분위기 메이커이긴 하지만 그 기복이 알수없어 장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팀 코칭스태프에게도 선택의 어려움이 있을 듯 보였습니다.

나지완 선수의 타격준비 모습.
나지완 선수 나오니까 남,녀 구분해서 응원을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여자 응원단이 적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여자분들의 목소리가 남자들 응원 소리보다 크고 확 들어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따가운 햇살에도 중간중간 쉬지 않고 응원하는 치어리더.
두산의 6명보다 조금 쪽수가 부족해서인지 전체 포스는 두산이 조금 앞선듯???~!!!
암튼 고생들 많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잠실야구장이 홈인 두산과 하는 경기라 역시 전광판이라든지 키스타임,스크린에 비추는 모습도 99% 비율로 두산이 많아서 가까운 지역팀을 응원하지 못하는 제 현실이 다소 홈구장의 잇점을 못 누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가 끝난후 나오면서 기아타이거즈 티를 하나 사고 김상현 선수의 이름과 등번을 인쇄해서 왔습니다. 다음엔 입고 응원할 생각입니다. 항상 광주외의 곳이 홈이라는 의미로 빨간색을 사고 싶었지만 흰색으로 구입했습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비록 경기는 10대 1로 졌지만,많은 다른 가족들,연인들,친구들과 함께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제 조금씩의 여유를 가지고 가족들과 조금은 자주 야구장이나 다른 스포츠도 찾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

신고
Trackback 0 And Comment 0

최근들어 글쓰기를 망설이면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프로야구 입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해태타이거즈의 호랑이 앰블럼을 보고 바로 이 팀이 나의 야구팀이다 라는 생각으로 열렬한 응원을 하며 팬클럽도 가입하고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프로야구 창단전 당시 집과 학교에서 가까운 동대문야구장(지금은 없어졌지만)으로 고교야구를 자주 보러 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군산상고,광주일고가 경기를 하면 정말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당시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동대문 야구장이 관중으로 가득 차 너무나 재밌게 야구를 하던 고교야구의 인기는 정말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그리고 82년 막을 올린 프로야구.
연고도 아닌 해태타이거즈를 응원하면서 당시 전라도라면 끔찍이 여기시던 아버지의 불호령에도 몰래 라디오를 이불속에 숨어서 듣고는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당시 최고의 타자들인 김일권,김성한,김준환
(82,83년 당시 소년중앙에 나오는 사진을 앨범에 넣어둔 것을 찾아냈습니다.)

당시에는 스포츠 신문도 없어서 기록같은 것을 볼수도 없어서 매일 중계방송을 듣고 개인별 타율,안타,타점등을 기록하고 팀순위도 정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팬클럽을 몇천원주고 가입하면 선물을 받았던 당시에는 기록수첩을 받아서 따로 기록하기도 했고 문방구에서 별도로 구매하여 기록을 정리하면서 누가 더 잘하고 있는지를 매일 체크하기도 했던 기억도 납니다.

요즘은 매일매일경기가 끝나면 인터넷의 기록이 그대로 정리해주고 있어서 그럴 필요까지 없었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간들을 정리해놓은 워키백과의 정리가 있어서 한눈에 그동안 놓쳤던 시절을 다소나마 복구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잠시 가졌습니다.

기아 타이거즈
회사명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
설립연도 1982년
마스코트 호돌이
소속 리그
한국 야구 위원회
한국 프로 야구(KBO)
이전 구단명
해태 타이거즈 (1982년 1월 30일~2001년 7월 31일)
홈구장
광주 무등 경기장 야구장, 군산월명종합운동장 야구장
수용 인원 13,872
연고지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
영구 결번
18 선동열


사실 개인적으로 프로야구를 좋아했던 시절을 종료한 계기는 역시 해태타이거즈에서 KIA로 바뀌던 2001년이었습니다.
해태가 없다면 프로야구도 없다고 마음을 접었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당시 KIA 자동차라는 회사를 정말 좋아했던 저였지만 (자동차 3대를 몰아오면서 여지껏 KIA차만 이용합니다.) 당시의 KIA자동차는 국민기업이라는 KIA 자동차가 아니라 현대에 인수된 KIA자동차였기에 왠지 기아타이거즈는 역시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오늘 경기를 보고 검색을 해보니 예전 해태타이거즈시절의 마크를 달고 유니폰도 예전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방송에서 보기도 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타이거즈는 역시 해태타이거즈의 시절이 그립고 프로야구의 존재의미도 해태타이거즈여야 한다는 익숙한 생각.
저 역시 그랬고 그래서 2001년부터 저에게 프로야구란 없었습니다.
WBC에서 올림픽에서 야구가 아무리 잘해도 프로야구는 저에게 저의 팀이 없어진 허무한 느낌 그대로 일뿐이었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을 타이거즈 골수팬이라 말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떠나있던 프로야구를 지난달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퇴근하고 와서 보던 방송에서 최희섭의 홈런과 김상현이라는 저에게는 낯선이름,그리고 완전 신인 안치홍선수의 깜찍스러운 타격을 보는 순간.
예전의 타이거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타이거즈.
군산상고의 핏줄,역전의 명수들이 뭉친 팀이어서 8회까지 몇점차가 나더라도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공격은 8회부터 였고 언제나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8회부터 역전을 하던 해태타이거즈.
그런 믿음을 주는 공격을 하고 있는 기아타이거즈.
기아타이거즈가 재작년엔 리그꼴찌까지 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검색해서 알정도로 그동안 무관심했던 제가 다시 타이거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심은 5위에서 4위로,4위에서 3위로. 점점 치고 올라가는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매게임 역전의 명수였다면 이제는 전체순위에서 역전의 명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년만의 2위라는둥 몇년만에 1위라는둥 오랜 관심의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었고, 오늘도 20홈런 타자 2명이상이 몇년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즐거운 저는 그동안 프로야구를 바라보던 애증이 다시 기아타이거즈를 향하고 있습니다.

연도별 포스트시즌 성적

82-08시즌 47승 29패 2무 (한국시리즈: 36승 9패 2무)

연도 최종 결과 라운드 상대 결과
승/패
1983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 시리즈 MBC 청룡 4 1 0
1986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 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4 0 1
1987 한국시리즈 우승 플레이오프 OB 베어스 3 0 2
한국 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4 0 0
1988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 시리즈 빙그레 이글스 4 0 2
1989 한국시리즈 우승 플레이오프 태평양 돌핀스 3 0 0
한국 시리즈 빙그레 이글스 4 0 1
1990 플레이오프 진출 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0 0 3
1991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 시리즈 빙그레 이글스 4 0 0
1992 플레이오프 진출 플레이오프 롯데 자이언츠 2 0 3
1993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 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4 1 2
1994 준플레이오프 진출 준플레이오프 한화 이글스 0 0 2
1996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 시리즈 현대 유니콘스 4 0 2
1997 한국시리즈 우승 한국 시리즈 LG 트윈스 4 0 1
2002 플레이오프 진출 플레이오프 LG 트윈스 2 0 3
2003 플레이오프 진출 플레이오프 SK 와이번스 0 0 3
2004 준플레이오프 진출 준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 0 0 2
2006 준플레이오프 진출 준플레이오프 한화 이글스 1 0 2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던 기간에도 포스트시즌에 그래도 4번은 올랐갔던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엔 왜 이러한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아마 그것은 지금처럼 호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WBC 영웅 이용규 선수가 기아타이거즈라는 것을 올해초 사고가 났을때야 알게 되었던 저였으니 얼마나 무관심했기도 했지만 애증의 마음으로 가끔씩 지켜보던 경기는 지리멸렬한 경기뿐이라 실망만 안겨주었습니다.

지난달 몇번의 중계방송에서 다이긴 경기를 무승부로 마감하는 2경기를 지켜 보았을 때만해도 잘하긴 하는데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처음엔 잘 이기다가도 점수를 너무 허용하여 추격당하는 기아타이거즈의 뒷심부족.
오늘의 SK와 경기에서도 초반득점이 없었으면 또 추격당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 아직은 존재하지만 확실히 달라진 모습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과거 해태타이거즈의 전성기의 모습을 보는 듯함 홈런포였습니다.
김상현,최희섭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루 걸러 홈런을 교환하고 나지완,안치홍,김상훈 또한 홈런을 적시에 때려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시원시원한 타이거즈의 모습을 느낍니다.

오늘까지 8연승중 특히 이번 8월달의 6경기를 보면 1회에 최소한 선취득점을 하고(그것도 만만찮은 점수로) 조금씩 뒤를 받쳐주면서 추가점으로 상대의 추격의지를 꺽으면서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다소 불안한것은 유동훈 선수를 제외한 깔끔한 마무리가 없어서 후반 실점이 많은 점인데 요즘의 기아타이거즈의 타격은 초반의 점수차가 그러한 위험부담에서 다소 자유롭고 어쩌면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게 합니다.

참 사람이 간사하긴 한가봅니다.
그동안 '해태타이거즈 이후로 프로야구는 끝났다' 라고 말하던 제가 다시 프로야구에 빠져들어 늦게까지 기아소식을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려서 리틀야구등을 하기도 했던 저이기에 아마도 야구는 애증과 애정으로 항상 관심을 둘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전국구 최고 응원단을 자랑했던 예전의 해태타이거즈의 응원단의 모습을 다시 보이고 있는 요즘.
그래서 과거 해태응원단들은 유별나다며 서울연고팀,특히 LG 응원친구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던 과거의 모습이 다시 보이고 있는 요즘.

다른 동료가족들이 야구장도 가고 한다면서 관심있는 스포츠도 없냐며 투정부리고 경기장도 한번 가자던 마누라는 요즘들어 언제부터 그렇게 야구에 관심이 있었냐며 원성을 보냅니다. 이제는 프로야구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느끼자 저녁시간에 자신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못 보는 불만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잠실경기가 있을 때 꼭 같이 가야 될 것 같습니다.
해태시절 제가 가면 꼭 지길래 경기장엔 안가던 습관이 있었는데 이제는 지는 경기를 보더라도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실제 얼굴들을 다 모르니) 듭니다.

아무튼 다시 시작되는 타이거즈 사랑으로,
올 시즌 타점왕,홈런왕,신인왕 등등 많은 타이틀을 거머지고 멋진 재기를 보여주는 기아타이거즈의 웅장한 함성을 듣고 싶어집니다.  

타이거즈 선수들 화이팅~~~!!! .
V-10 해보자 !!!.

신고
Trackback 0 And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