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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생활보기/즐거운 야구9

이대호 은퇴식.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의 은퇴식이 있었습니다. 어제의 나지완 선수 은퇴식과는 다른 눈물이 흐르는 은퇴식이었습니다. 롯데의 성적에 비하면 너무나 거대한 선수라 더 슬픔과 안타까움이 보이는 은퇴식이었다고 보입니다. 영구결번.10 최동원 선수 11번에 이은 현존하는 영구결번 선수로 롯데에서 처음 이루어진 은퇴식이었습니다. https://tv.kakao.com/v/432589103 롯데 선수들도 마지막 인사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현 상황의 롯데의 안타까움이 보여서 더 이대호 선수의 은퇴가 안타깝고 동기인 추신수도 아직 현역으로 우승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암흑기 롯데를 이끌었던 이대호 선수에 대한 애틋함이 저 역시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우승을 해보기 위해 팀을 옮기기도 하고 그래서 기쁨을 나누기도 .. 2022. 10. 8.
나지완 은퇴식. 10월 7일 나지완의 은퇴식이 열렸습니다. 긍정적 쓰나미 앵커나 개그맨을 해도 될만한 입담을 가진 거포였던 나지완... 해태시절을 접고 무한 야구를 저주했던 시절에 햇살같이 다시 다가온 시절의 선수였습니다. 2007년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이라는 전세계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그 자리에 제가 있었습니다. 그저 홈런공이 머리위로 지나가는 순간이었던 당시 외야에서 9회 공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데 공을 줍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눈물과 이겼다는 환희가 있었던 순간을 경험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야구를 몇십년을 보면서 그런 감동의 눈물을 흘릴수 있는 경험은 없을거라는 장담을 해도 누구라도 인정할수 없는 그날 (메이저리그도 그런 장면이 100년 넘게 없었습니다). 그 주인공이 나지완이었습니다. 그.. 2022. 10. 8.
KIA 타이거즈의 두자리점수 6연승, 그리고 양현종, 나지완. 2009년 어쩌면 나에게 그해가 프로야구 직관의 마지막 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생활에 미치도록 바쁘지만 그래도 그때만 해도 여유로운 개인적인 삶을 살수 있었던 마지막 해였는지도요. 아무튼 찬란한 2009년 타이거즈의 우승을 함께 했던 그날의 한국시리즈 7차전의 기억은 여전히 제 뇌리에 각인 되었습니다. 3장의 티켓을 준비했지만 자신이 가면 매번 지는 것 같다고 마누라는 결국 직관을 포기한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 어렵게 구한 외야 티켓을 혼자 가지고 3루쪽외야에 홀로 앉아 있던 기억.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습니다. 머리위에 있는 하얀공.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공이 제 머리위로 지나갑니다. 참.......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 이 느낌. 그날 함께 있었던 분만 아시겠죠.. 2017. 7. 3.
타이거즈의 우승(V10), 기록과 해태라는 이름.(2009.10.29) 우선 이글은 10월 22일 새벽 과거 97년의 해태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를 회상하는 경기를 보며 갑자기 떠오르는 인물 김상진 선수의 이야기를 검색하다가 쓰기 시작했음을 알림니다. 무엇보다 김상진 선수의 97년 5차전경기의 추억을 찾다가 발견한 한 카페( http://cafe.daum.net/sangjin11 ) 의 글들을 보면서 그 오랜 시간 팬으로서의 모습을 간직한 글들을 보고 82년 창단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 또한 저의 머릿속을 스쳐지나면서 주옥같은 팬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제가 그동안 기아로 바뀌면서 무관심했던 타이거즈에 대한 마음을 반성하게도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우승할 것''만 같았다. 마치 ''진짜 타격의 신의 모습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듯 이강돈은 1회말, 다른 .. 2013. 10. 7.
역사적 현장, 한국시리즈 7차전 관람 (V10 타이거즈 우승!!!)(2009.10.26) 지금까지 응원가가 귓속을 맴돌며 야구의 한장면 한장면이 떠오릅니다. 미국야구 100년 역사에서도 단한번 나왔다던 월드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 그 장면을 28년 한국의 프로야구에서 세계적으로 두번째 7차전 끝내기 홈런. 그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는 마음과 그렇게 애닳던 V10에 대한 열망을 몸소 현장에서 느낄수 있었던 감흥이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경기장에 가는 마음은 좀처럼 쉬운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7차전 그동안은 여유있게 지정석위주로 다녔고 한국시리즈 4차전은 회사에 허락을 맡고 일반석이지만 일찍가서 좋은 자리를 잡았지만 7차전은 회사에 말도 안했고 티켓은 새벽 4시 취소표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반석을 2장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6차전의 패배로 마누라는 더이상 힘들고, 자기가 가서.. 2013. 10. 7.
한국시리즈 6차전 관람후기(2009.10.24) 잠실 지정석 예매로 여유있게 가도 되겠지 하는 마음에 사무실에 따로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누라는 시간마춰 출발했고, 저는 갑자기 사장님이 오신다는 이야기에 어쩔수 없이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이래저래 일 때문에 5시40분이 되어서야 출발 . 주차하는데 시간걸려서 이래저래 늦고, 마누라는 처음가는 잠실야구장이라 1루내야 출입구에서 기다려야하는데 외야로 입장을 해버리고, 또 시간허비.... 멀리 탄천주차장에 주차하고 뛰어오느라 땀은 범벅. 다행이라면 2회 이호준의 홈런을 눈으로 안봐도 되었다는 점. 잠실 지정석중 어쩌면 가장 안좋은 블럭이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201블록은 이종범 선수의 수비를 볼수 있는 위치가 아니어서 제대로 관람을 못했고, 김상현 선수의 홈런성 파울타구도 갑자기 사라져서 D.. 2013. 10. 7.
96',97' 해태타이거즈, 추억의 한국시리즈(2009.10.22) 게임이 없는 하루.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다가 96년과 97의 해태타이거즈의 자료를 일부 찾았습니다. 얼마전 이종범 선수가 이야기 했던 현대와의 퍼팩트 경기후의 이야기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승2패후 그것도 마지막 4차전 10월20일 경기 정명원 투수의 노히트노런 경기. 저 역시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당시 '지더라도 안타만 하나 제발 쳐라'며 응원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해태가 그것도 한국시리즈에서 노히트노런 경기를 하다니' 하면서 분을 삭였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2연승하며 우승하던 타이거즈의 모습. 지금 돌이켜보면 해태타이거즈 시절 정말 대기록을 상대투수에게 많이도 안겨주었던 기억도 다시금 생각이 나기도 하면서, 극과 극을 보여주었던 그 시절 경기를 일부나마 .. 2013. 10. 7.
15년만의 잠실야구장 나들이(2009,09.14) 잠실야구장을 찾은지 15년만인 것 같습니다. 94년 9월 가을 정기 학교대항전을 이유로 찾은 잠실야구장이니 어제 13일을 대충 15년만에 야구장에 찾은 것으로 보아도 될 듯 합니다. 프로야구를 좋아하지만 그렇게 자주 찾아가보지는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예전 동대문운동장 시절에는 5분거리로 집도 가깝고 형도 자주 가는 편이었던 시절이라 야구장에 자주 다녔는데 잠실야구장시절이 오고부터는 왠지 자주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잠실야구장 시절에는 또 역시 집에서 10분거리에 야구장이 있었지만 잠실야구장에서의 타이거즈 경기를 보려고 간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혹 이런 이유 하나씩 가지신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내가 국가대표 중계를 시청하면 우리나라 경기가 지더라..... 저 역시 제가 잠실야구장에 가서 본 경기를.. 2013. 10. 7.
타이거즈의 8연승,다시 시작된 야구사랑(2009.08.09) 최근들어 글쓰기를 망설이면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프로야구 입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해태타이거즈의 호랑이 앰블럼을 보고 바로 이 팀이 나의 야구팀이다 라는 생각으로 열렬한 응원을 하며 팬클럽도 가입하고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프로야구 창단전 당시 집과 학교에서 가까운 동대문야구장(지금은 없어졌지만)으로 고교야구를 자주 보러 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군산상고,광주일고가 경기를 하면 정말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당시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동대문 야구장이 관중으로 가득 차 너무나 재밌게 야구를 하던 고교야구의 인기는 정말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그리고 82년 막을 올린 프로야구. 연고도 아닌 해태타이거즈를 응원하면서 당시 전라도라면.. 201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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